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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3개 부처가 본체를 가지고 있고, 좌상은 제화갈라보살, 우는 미륵보살로 보이나, 다른 한편으로 관음과 미륵보살은 당시 가장 널리 퍼져 있던 신앙의 양상으로 여겨진다.


옆에서 보면 부처님 코가 가운데 가장 높은 것 같은데 부처님 코는 두께가 20cm가 넘으니 두꺼운 바위를 베어 안에 숨은 부처님을 드러내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가.


백제 사람들은 왜 이렇게 외진 산 암벽에 아내를 두는데 그렇게 애를 먹었을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6세기 후반의 백제사를 이해해야 한다.


백제는 한강 유역을 점령했고 고구려와 가까운 시기에 육로로 중국과 교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수왕의 남행(南行)을 따라 천도가 남쪽으로 설정되었고, 신라는 더욱 강해져 한강 유역을 빼앗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바다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당진·태안 지역은 중국 산둥섬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 이곳이 무역항이다. 여기서부터 수도 웅진(공주)이나 사비(부여)로 가는 길은 태안에서 서산, 예산 가야산길로 이어진다.


태안 삼존불, 태안 삼존불, 예산 화전리 석존불 등이 모두 그런 길목에 자리하고 있으니 무역로를 따라 평화와 평화를 기원하는 큰절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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